2017년 8월 30일 수요일

산융이 태원(太原), 고류(高柳) 일대로

춘추좌전( 春秋左傳 )
BC664  莊公 三十年冬,
公及齊侯遇于魯濟。齊人伐山戎。
遇于魯濟,謀山戎也,以其病燕故也。
장공과 제후가 노의 제수(濟水)에서 만나고,  
제(齊)가 산융을 벌(伐)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연(燕)을 괴롭히기 때문이었다.

사기 흉노열전(史記 匈奴列傳 )
而山戎伐燕 , 燕告急於齊 , 
齊桓公北伐山戎 , 山戎走  .
산융이 연을 벌(伐)하자 연이 제에 고하여, 
제환공이 산융을 치자, 산융이 도망갔다.

[참조] 허허, 산융(山戎)과 제(齊), 북연(北燕)
"
齊人伐山戎제나라가 산융을 쳤다
" 역사상 가장 첨예한 사건 중에 하나이다. 이 산융이 조선이든가 조선의 속국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산융의 위치와 이 당시 연의 위치는 이 뒤 펼어지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을 밝히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융과 북융의 위치를 살펴보았는데 이들도 산융과 동일시 되거나 하나의 지파로 보고있는 바, 이 사건 이후로 산융은 두로공신도비와 조선에서 살펴본 조선(朝鮮)지역 즉 태원(太原), 고류(高柳) 일대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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