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8일 월요일

두로공신도비(豆盧公神道碑)의 조선(朝鮮)

두로공(豆盧公: 豆盧永恩)

두로공(豆盧公: 豆盧永恩 : 514년~562년)
君諱永恩 字某 昌黎徒河人 本姓慕容 燕文明帝皝之後也.
朝鮮箕子之封 孤竹 伯夷之國 漢有四城 秦爲一候.
其先 保姓受氏 初存柳城之功 開國承家 始靜遼陽之亂.
군의 휘는 영은이고 자는 모(某)이며 창려(昌黎) 도하(徒河) 사람이다. 본래 성은 모용(慕容)이다 문명제(文明帝) 모용황(慕容皝)의 후손이다. 조선(朝鮮)은 기자(箕子)가 봉해진 땅이고, 고죽(孤竹)은 백이(伯夷)의 나라이며 (그곳에) 한(漢)나라 때는 사성(四城)이 있었고 진(秦)나라 때는 일후(一候)가 있었다. 그 선조가 성(姓)을 보존하고 씨(氏)를 받았으니 처음 유성(柳城)의 공이 있어 나라를 열고 가업을 계승하였으며 요양(遼陽)의 난을 진정시켰다.

핵심 내용

朝鮮建國 孤竹爲君 地稱高柳 山名密雲 遼陽趙裂 武遂秦分
조선(朝鮮)이 건국되고 고죽(孤竹)이 군(君)이 되었다. 땅은 고류(高柳)라 칭하고 산(山)이름은 밀운(密雲)이다 요양은 조(趙)나라가 취하고 무수(武遂)는 진(秦)나라가 나누었다.
위 비문 내용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유산자집(庾子山集)에 수록되어 있다.
위 지도는 497년 기준의 지도로 고류, 밀운, 무수의 삼각지점을 표시했다.

한서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대군(代郡) 고류(高柳)는 서부도위(西部都尉)치소이다. 수서지리지에서 말하기를 안악군(安樂郡) 밀운현(密雲縣)은 후위(後魏)에서 두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후위의) 밀운군은 백단(白檀), 요양(要陽), 밀운(密雲) 3개의 현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사기조세가(史記趙世家) 도양왕(悼襄王) 9년, 조(趙) 나라가 연(燕)나라를 공격하여 리양성(貍陽城)을 취하였다고 하였다. 정의(正義)에서 말하기를 연(燕) 나라는 리양(貍陽)이 없으므로, 리(貍)자는 당연히 어양(漁陽)의 옛 성이다라고 하였는데 단주(檀州) 밀운현(密雲縣) 남쪽 18리에 있는 연(燕) 나라 어양군성(漁陽郡城)이다. 조(趙) 나라의 동쪽 국경은 영주(瀛州)에 이르는데 즉 단주(檀州)가 북쪽에 있다. 조(趙) 나라가 연(燕) 나라을 공격하여 어양성(漁陽城)을 취한 것이다. 지리지(地理志)에서 말하기를 요양(遼陽)은 요동군(遼東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위 지도에서 무수의 북서쪽에 박릉군(博陵郡)요양현(饒陽縣)이 조(趙)의 국경지역인 영주(瀛州)근처인데 ...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무수(武遂)는 안평(安平)에 속하였다고 하였다. 정의(正義)는 말하기를 괄지지(括地志)는 역주(易州) 수성(遂城)은 전국(戰國)시대에 무수성(武遂城)이라 말한다고 한다. 수서지리지가 말하기를, 상곡군(上谷郡) 수성(遂城)은 옛날에는 무수(武遂)라 하였고, 지금은 모용씨(慕容氏)의 本都라 말한다. 연국(燕國)은 대개 연무수성(燕武遂城)이라 하였다 전국(戰國)시대에 연(燕) 나라가 진(秦) 나라에게 멸망당하였기 때문에, 무수(武遂)는 진(秦)나라가 나누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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